트로이 전쟁은 끝났다.
영웅들은 승리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에게는 그 귀갓길이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고른 다음 이야기가 ‘오디세이’ 라는 사실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 있다. 시간, 기억, 인간의 선택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온 감독에게 ‘끝없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남자’만큼 잘 어울리는 주인공이 또 있을까.
원작은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약 2,700년을 살아남은 고대 그리스 서사시다. 이름만 들으면 고전문학 시험 범위부터 떠오르지만 내용은 의외로 대중적이다.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서 온갖 사고를 겪는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 마녀 키르케, 심지어 저승까지 등장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판타지, 로드무비, 생존극, 가족극이 한 작품 안에 다 들어 있다.
다만 오디세우스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웅은 아니다. 이 남자의 진짜 무기는 머리다.
거짓말도 잘하고, 상황 판단도 빠르며 필요할 때는 자존심도 접는다. 꽤 영리하고 꽤 얄밉다. 그래서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 괴물보다 더 중요한 건 ‘집’
영화를 보기 전에 하나만 기억한다면 이걸 추천하고 싶다.
‘오디세이’는 모험담이지만 결국 귀환의 이야기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괴물과 싸우는 동안 페넬로페는 이타카에서 수많은 구혼자들을 버텨낸다. 아들 텔레마코스 역시 사라진 아버지의 빈자리를 견디며 성장한다.
한 사람은 돌아가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다린다.
이 구조를 알고 보면 화려한 신화 뒤에 숨어 있던 시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괴물이 아니라 너무 오래 집을 비운 사람에게 생기는 변화인지도 모른다.
+ 포세이돈은 왜 이렇게 오디세우스를 싫어할까
관람 전에 신들의 관계를 전부 외울 필요는 없다. 딱 두 명이면 충분하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돕는 쪽, 포세이돈은 그의 귀향을 계속 방해하는 쪽이다.
특히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속이고 눈을 멀게 만든 뒤 상황이 제대로 꼬인다. 바다의 신을 적으로 돌렸으니 항해가 순탄할 리 없다.
그래서 ‘오디세이’에서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 놀란은 이번에도 정말로 바다에 나갔다
놀란답게 제작 방식도 꽤 고집스럽다.
‘오디세이’는 장편 극영화 최초로 전체 분량을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고, 촬영을 위해 더 가볍고 소음이 개선된 차세대 IMAX 카메라까지 활용됐다.
그리고 바다는 스튜디오 안에서 적당히 만들지 않았다. 실제 배를 띄우고, 실제 바람과 파도 속에서 촬영했다. 배우들이 느끼는 불편함까지 화면에 남기겠다는 방식이다.
촬영지는 그리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를 비롯해 모로코, 시칠리아,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등 여러 지역을 오갔다. 각각의 장소를 정확한 신화 속 지명으로 복원했다기보다, 오디세우스가 점점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감각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따뜻한 지중해에서 시작해 차갑고 황량한 풍경으로 넘어갈수록 여행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진다.
이건 IMAX로 볼 이유가 꽤 분명하다
놀란 영화마다 따라붙는 말이지만 이번에는 “IMAX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홍보 문구처럼 들리지 않는다.
+ 바다, 절벽, 배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인간 한 명
이번 영화에서 큰 화면이 보여주는 것은 거대한 괴물만이 아니다. 압도적인 자연 속에서 사람이 얼마나 작아지는지를 보는 경험에 가깝다.
그리고 그 작은 사람이 계속 집으로 간다.
생각해보면 ‘오디세이’가 2,700년 가까이 살아남은 이유도 거창하지 않을지 모른다. 멀리 떠났다가 결국 돌아가고 싶은 마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오래 걸려도 집을 포기하지 않는 것.
신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지 않아도 된다. 원작을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다.
트로이 전쟁은 끝났고,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가는 중이다.
그 정도만 알고 극장에 들어가도 충분히 재미있다.
+ 서울까지 이어진 ‘오디세이’의 여정
이번 작품은 영화 밖에서도 특별한 장면을 만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오디세이’를 들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고, 맷 데이먼과 샤를리즈 테론, 프로듀서 엠마 토머스도 함께 서울을 방문했다. 놀란은 한국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에 보내온 애정에 감사하다고 전했고, 맷 데이먼은 10년 만의 한국 방문을 가족과 함께 즐겼다.
왠지 ‘오디세이’라는 제목과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긴 항해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이, 개봉 직전 다시 먼 도시를 돌며 관객을 만나는 중이니까.
영화 속 여정만큼 거창하진 않지만, 이런 순간이 작품을 조금 더 가까운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